이종철 한국선주협회장(STX그룹 부회장)은 지난 6월 해운업계
CEO(최고
경영자) 초청 간담회에서 "해운시황이 침체돼 정기선，부정기선 모두 상황이 좋지 않다"며 "시황 침체의 장기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유가부담이 지속되면 선사마다 적자가 쌓일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최근 해운사들의 실적을 보면 이 회장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는 것 같은 양상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팬오션 등 국내 대형 해운사들이 ’적자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대형 선사마저 ’빨간불’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선사인 한진해운은 지난 2분기에 1000억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은 평소와 비슷한
규모인 2조3000억원대지만 적자 폭은 전 분기 대비 훨씬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 1분기엔 매출 2조2037억원，영업손실 116억원을 기록했다. 한진해운은 내달 중순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현대상선은 2분기 78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고 지난 25일 발표했다. 매출은 1조8564억원으로 1분기보다 9.35% 늘었지만, 적자 폭이 커진 것이 문제다. 이 회사의 1분기 영업 적자는 275억원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이 의무화됨에 따라 영업외손익에 반영되던 선박매각손실(350여억원)이 영업손익에 들어가면서 적자 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1분기 4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STX팬오션은 2분기에 가까스로 흑자를 낸 것으로 예상되지만 선박매각 차익 등에 힘입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벙커C유↑ · 선박운임↓’이중고’
대형 해운사들의 영업손실 폭이 커진 것은 유가가 급등한 데다 선박
과잉공급으로 운임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해운업계가 이용하는 싱가포르 벙커C유 작년 평균 가격은 t당 475달러였으나,올 들어 670달러대로 급등했다. 올 상반기에만 40% 가까이 기름값이 뛴 셈이다.
세계 해운시장에선 선박이 넘쳐나고 있다. 벌크선의 경우 현재 조선사들이 건조하고 있는 수주잔량은 전 세계에 운항 중인 전체 벌크선의 4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안에 벌크선 수가 50%가량 늘어난다는 얘기다. 컨테이너선도 공급 과잉에 따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전 세계적으로 총 177척의 컨테이너선이 발주됐다.
벌크선의 증가와 컨테이너선의 대형화는 운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화물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작년 이맘 때 1801이었으나,최근 1323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8월 1211.79까지 올랐던 중국발컨테이너운임지수(CCFI) 역시 최근 976.36까지 하락한 상태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물동량은 오히려 늘면서 해운사들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벙커C유 가격이 너무 높은데다 운임이 회복되지 않아 적자 폭이 커졌다"며 "3분기 이후에는 컨테이너 부문이
계절적 성수기에 들어서게 돼 수익성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소 선사 ’도미노 도산’ 우려
중소 선사들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법정
관리를 신청하거나 자진 폐업하는 회사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 전반에 위기의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반 동안 국내 해운사 중 법정관리를 신청한 곳은
대한해운과 삼선로직스，TPC코리아，양해해운 등 8개사다. 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 중소형 선사 두세 곳이 추가적으로 넘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